설립자는 1926년 황해도 황주읍 태생으로 1945년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하다 보안서 치안대원에게 연행되어 자유를 박탈 당하고 다니던 평양정의여고를 퇴학 당하고 1947년 2월 만 19세의 나이로 자유를 찾아 홀로 월남하였습니다. 월남하여 사랑하는 딸에 대한 어버이의 한 맺힌 사랑을 보상하기 위해 나라와 겨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승화시키려고 형극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6.25라는 동족상진의 슬픔과 괴로움 속에 군문에 뛰어 들어 전우들과 아픔을 함께 했고 대한민국 여자청년단애국애족의 끓는 피로 여성 계몽에 앞장서 불우 여성 선교교화로 자립갱생의 새 삶을 위한 가정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1956년 세상에서 버림받고 외롭게 살아가는 나환자촌 성화원을 방문하여 미감아(나병환자의 자녀이지만 감염되지 않은 어린이) 25명을 데리고 나와 전쟁고아 및 가정고아들을 함께 모아 1957년 2월 처녀의 몸으로 박애원(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934번지 소재)을 설립하여 가난하고 불우한 아동들을 위해 아동보육사업과 교육사업으로 자신의 평생을 바쳤습니다.